싸게 샀다고 잘된 인수가 아니다

인수가 잘된 것인지는 발표한 날에 알 수 없다. 몇 해가 지나 그 회사가 얼마짜리가 됐는지를 봐야 안다.

그런데 대부분은 볼 수가 없다. 합쳐져 사라지면 그 회사만의 값이 없어지기 때문이다.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팔린 뒤에도 따로 상장돼 시장이 값을 매기고 있는 회사들뿐이고, 우리 데이터에 그런 건이 10건 있다.

지금 시가총액 ÷ 그때 산 값

성적표

지금 / 산 값인수그때 매출 대비해마다
76배SK텔레콤 → 하이닉스1.3배36.2%
13배한국조선해양 → 대우조선0.2배91.6%
9.6배SoftBank → Arm24배25.4%
7.2배NVIDIA → Arm20배63.9%
6.6배한화 → 대우조선0.9배87.9%
1.8배Broadcom → Qualcomm5.2배7.9%
1.3배두산 → 밥캣1.9배1.5%
0.7배Adobe → Figma50배-10.5%
0.7배대한항공 → 아시아나0.3배-17.7%
0.5배카카오 → SM3.7배-18.6%

맨 위는 SK텔레콤 → 하이닉스다. 14년 전 16.3조 원에 샀고, 지금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1,237조 원이다. 76배, 해마다 36.2%씩 불어난 셈이다.

여기까지 보면 "싸게 사서 잘됐다"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. 그때 이 거래에 붙은 값이 매출의 1.3배였으니 더 그렇다.

그런데 표를 끝까지 보면 그 이야기가 서지 않는다.

가격은 결과를 맞히지 못했다

그때 배수의 순위와 지금 값의 순위를 견주면 -0.15이다. 0 이면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이고, 이 값은 0 근처다. 싸게 산 것이 잘되지도, 비싸게 산 것이 망하지도 않았다.

표에서 바로 확인된다.

무엇이 갈랐나 — 산 시점의 업황

같은 회사를 두 번 산 건이 이 표에 있다. 한국조선해양 → 대우조선와 한화 → 대우조선, 둘 다 대우조선이다. 앞은 매출의 0.2배에 사려다 무산됐고, 뒤는 0.9배에 실제로 샀다. 값은 네 배 넘게 차이 나는데 지금 결과는 해마다 91.6%와 87.9%로 나란히 맨 위다.

가격이 달랐는데 결과가 같다면, 결과를 만든 것은 가격이 아니다. 조선업이 좋아진 것이다.

같은 눈으로 다시 보면 표가 다르게 읽힌다.

  • 위쪽: 조선(대우조선 두 건), 반도체(하이닉스·Arm) — 산 뒤에 그 산업이 크게 좋아졌다
  • 아래쪽: 엔터(SM), 항공(아시아나), 디자인 도구(피그마) — 산 뒤에 그 산업이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다

여기서부터는 해석이다. 데이터가 말해 주는 것은 "가격과 결과 사이에 관계가 없다"까지고, 그 빈자리를 업황이 채운다는 것은 이 글이 붙인 설명이다.

그래서 인수 기사를 볼 때

배수를 보고 "비싸다, 그러니 실패할 것"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표본에서 근거가 없다. 대신 물을 것은 셋이다.

  • 이 산업의 사이클에서 어디쯤에서 사는가
  • 파는 쪽이 급했나, 사는 쪽이 급했나 — 채권단이 들고 있던 회사는 바닥에서 나온다
  • 낮은 배수는 싼 것인가, 아니면 그 산업이 사양이라는 뜻인가

마지막 물음이 가장 어렵다. 대한항공 → 아시아나가 그 예다. 싸게 샀지만 싼 데는 이유가 있었다.

이 표에 없는 것

이 10건은 살아남아 값이 매겨진 회사들의 표다. 합쳐져 사라진 회사, 상장이 유지되지 않은 회사는 애초에 여기 들어오지 못한다. 잘된 인수가 과대 대표됐을 수도, 그 반대일 수도 있다.

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"싸게 사라"도 "비싸게 사라"도 아니다. 가격만으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.